같은 역사와 조상을 가진 우리는 한 민족이지만 한 나라는 아니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될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과 북으로 찢어졌다. 각국의 이익을 위해 둘로 나뉠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는, 한 핏줄 한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를 상실한 채 남한과 북한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갑작스럽게 그어진 38선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고 분단국가라는 아픔 속에서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을 마치 그냥 붙어있는 두 나라처럼 다른 통치 방식과 다른 사상을 가지고 서로를 등진 채 살아왔다. 그러던 중 1991년 우리나라 탁구 대표 선수들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5년이 넘도록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선수들에게 큰 대회를 앞두고 결성된 남북 단일팀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사상도 문화도 서로 다른 이들의 만남, 서로 마주 서지 않고 나란히 서기 위해 겪는 과정에는 피할 수 없는 고난이 따랐다. 감정의 충돌, 분단되며 각인된 상대국에 대한 편견, 단일팀이 되기 이전의 경쟁심……. 일본에서 개최된 지바(Chiba)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위해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이뤄 호흡을 맞췄던 우리 선수들의 이야기를 영화 ‘코리아’에서 볼 수 있었다.

함께 나란히 서서
선수들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코리아(Korea)’팀이 되어 한반도기를 가슴에 달고 훈련에 들어갔다. 당시 중국대표팀은 탁구 세계선수권 여자단체전에서 8회 연속 우승을 할 정도의 막강한 팀이었다. 그런 탁구 강국 중국에 밀려 은메달, 동메달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양 팀의 신경전은 한팀이 되고 나서도 그칠 줄을 몰랐다. 양 팀을 대표해 함께 복식조를 이루게 된 남한의 현정화(하지원)와 북한의 리분희(배두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사건건 부딪혀 갈등이 끊이질 않았고 한팀이 되었으면서도 분열되어 상대를 누르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훈련이 거듭되면서 양 선수들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움직였다. ‘남한과 북한 정도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며 코리아 팀을 얕보는 중국의 태도는 코리아 팀의 승리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고대하던 중국과의 결승전, 현정화와 리분희, 나란히 선 두 선수의 뒷모습은 가슴 속에 무언가를 건드리며 관객들을 전율하게 하였다. 우연한 만남에 인사차 건넨 단순한 명함 한 장도 망명 의도가 되어 버리는 북한이다. 북한 선수들은 검은 양복을 입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지시하고 감시하는 보위대의 통제를 따라야 했다. 이른바 ‘위대한 수령님’이라 칭하는 김일성의 얼굴이 그려진 빨간 뺐지가 그들의 가슴팍에서 빛났다. 선수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 때문에 코리아 팀이 결승에 진출하기까지는 많은 위기가 따랐다. 준결승 전, 그동안 선수들 간의 친밀함이 문제가 되어 함께 시합을 나가지 못하는 사태가 왔다. 선수들의 해명과 간절한 외침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감독과 코치마저 보위대의 냉정함 앞에서 일을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결승전을 하루 앞둔 날, 북한 팀이 없이 출전해야 할 위기 앞에서 남한 선수들은 한마음으로 외쳤다. “같이 가요. 우리 코리아 팀, 왜 또 우리가 단절돼야 합니까. 탁구 하나같이 친다고 하나 되는 거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이 치고 싶습니다.” 현정화의 진심 어린 말은 체념해 있던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고 감독은 망부석 같던 보위 대장을 움직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당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소. 우승하는 것이 당의 명령 아닙니까. 이번만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겠소.” 남한도 북한도 아닌 이국땅에서, 수천 만의 겨레가 지켜보는 가운데 코리아 팀은 당당히 승리했다.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반도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38선을 바라보며 코치는 말했다. “갈라지고 나눠진 땅에서 각자 따로 살면서 탁구대에서도 적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선을 넘고 그래서 같은 곳에 서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나란히 서면, 하나가 되면 그 힘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보여주자. 우리는 하나다. 코리아 팀 파이팅!”
  ‘코리아’의 빠트릴 수 없는 묘미 중 하나는 바로 최연정(남한)과 최경섭(북한)의 소소한 연애담이다. 연정은 경섭을 보고 용기를 내어 다가서지만 경섭은 연정을 멀리한다. 적극적인 연정의 구애에 경섭은 다른 곳을 보며 외면하고 심지어는 이미 혼인을 해 색시까지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듣게 되는 경섭의 진심……. “싫지 않습니다. 대회 끝나면 얼굴도 못 보고 살건대 피차 마음에 정분이라도 나면 그 마음을 품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청춘의 불타는 마음조차 분단의 아픔 앞에서는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더니 분단국가에서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다. 감정에 따르기 이전에 규칙에 얽매여, 분단 현실에 얽매여 스스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며.
“언니, 나 뭐라고 해야 해. 전화할게도 안 되고 편지할게도 안 되고 뭐라고 인사를 해.” 가슴 절절한 이별 장면이 관객들을 울렸다. 버스의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꼭 잡은 두 손은 마치 이산가족의 이별 장면을 연상케 했다. 세계선수권대회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만나 금방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갑작스러운 이별은 애달팠다. 비록 46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한 민족으로서,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팀이 되어 서로 이해하고 함께했다. 낯선 말투, 다른 사상·생활방식·연습방식……. 처음에는 적대심과 거리감에 섞이지 못했던 그들이었지만 훈련이 거듭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소통하고 나누었다.
  “우리 또 만나.” 북한으로 떠나는 리분희에게 현정화가 건넨 마지막 말이다. 1991년 지바 대회 이후 2년 뒤 1993년 리분희와 현정화는 정말로 다시 만났다. 비록 나란히 서서가 아닌 마주 선 만남이었지만. 그리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 19년 동안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이번 영화가 만들어지며 ‘코리아’의 제작사 더타워픽쳐스는 지난 3월부터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 리분희와 현정화의 만남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냉각된 남북 관계와 통일부의 반대 때문에 그 만남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내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이 있다. 우리의 비장의 무기도 아직 우리 손에 있다. 희망이 있다. 많은 이들이 이미 통일은 늦었다고, 통일을 해도 좋을 게 없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핏줄을 이으면서 언제까지 서로 외면만 하며 살 것인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절의 청년, 처녀들은 어느덧 검버섯 핀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막심한 주름살을 이고 언제 올지 모를 ‘그 날’만을 기다리며 애타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생활 환경이 열악한 북한의 평균 수명을 고려해 볼 때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애타는 심정으로 꽉 닫힌 문을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는 이산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통일이 지체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언제까지 미루고 싸우고 화만 낼 것인가. 이제는 대화가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정리할 수 없어요. 서로 이야기하면 다 해결될 일 아닌가요?” 영화 속 현정화의 대사처럼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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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원 수습기자
 

유희원 수습기자  dbgmldnjs-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