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근해에서 침몰했다. 침몰 여객선 피해자 가운데는 특히 수학여행 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상당수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많은 국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각 지역의 합동분향소를 찾아 추모를 하거나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에 참여하며 한마음으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선원과 해경의 미숙한 대처방식과 정부의 늑장 대응이 거센 비판에 직면하였고,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의 보도 행태도 이를 피해갈 순 없었다. 예민한 사건인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는 그렇지 못했다. 무리한 속보경쟁으로 사실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정보를 방송에 내보내며 오보를 내기 일쑤였다. 특히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비롯해 많은 국민에게 크나큰 혼란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사건
2003년 2월 18일 대구의 중앙로역에서 대형 지하철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건 역시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이번 세월호 사건과도 유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사고의 원인이 인재에 있으며 초기대응 실패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사고 대처의 수준이 후진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언론의 변함없는 자극적인 재난보도 방식이다.
한국기자협회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재난 보도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재난보도준칙’ 제정을 추진했으나 마무리되지 못했다. 당시 추진하려던 재난보도준칙의 내용은 ▲이미 발생한 피해 상황 전달보다 앞으로 전개될 다른 피해를 예방하고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보도 ▲인명 구조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취재 ▲위기상황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데 주력 ▲불확실한 내용은 철저히 검증해 유언비어 확산을 억제하는 데 기여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인터뷰 강요 금지 ▲생존자 및 사상자의 신상 공개 자제 ▲근접촬영 자제 ▲자극적인 장면 반복 보도금지 등 피해자와 가족의 프라이버시와 명예, 심리적 안정의 보호 등이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현재 세월호 침몰 참사의 언론 보도를 비교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실종자 가족 및 유가족의 오열하는 모습을 근접 촬영하며, 자극적인 장면을 반복 보도한다. 이번 사건에서 언론의 행동 중 국민들에게 큰 질타를 받은 몇 가지 사건이 있다. 국가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비롯해 MBC, SBS, JTBC 그리고 조선닷컴과 이투데이와 관련한 사건이다.
KBS에서는 세월호 참사 수색 구조 활동을 보도하던 중 “구조 당국이 선내 엉켜있는 시신을 다수 발견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SBS는 홀로 구출된 6세 여아 피해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했고, JTBC는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학생에게 친구가 사망했는지 아느냐고 묻는 등 국민을 경악케 했다. 심지어 MBC와 조선닷컴에서는 아직 구조작업이 진행 중임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보험금액을 계산해 보도하는가 하면, 이투데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영화 ‘타이타닉’과 ‘포세이돈’ 등 선박사고를 다룬 영화소개 기사를 실어 논란을 일으켰다. 10여 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언론에서 시신으로 보이는 잔해를 클로즈업한 사진과 영상을 기자들 마음대로 촬영하고, 장례식장과 병원의 허락 없이 찍은 사진들로 넘쳐났던 실정에서 전혀 달라진 점이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한국기자협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기자협회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통해 재난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 ‘재난보도준칙’ 제정을 추진했지만,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줄어들자 무산됐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로 인해 재난보도준칙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자 한국기자협회는 뒤늦게 제정을 재착수하기로 했다.
또 한국기자협회에서 사고 사흘만인 20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도 가이드라인 10개항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세월호 참사 보도는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 ▲피해 관련 통계나 명단 등은 반드시 재난구조기관의 공식 발표에 의거해 보도한다 ▲진도실내체육관, 팽목항, 고려대 안산병원 등 주요 현장에서 취재와 인터뷰는 신중해야 하며,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보도한다 ▲생존 학생이나 아동에 대한 취재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언론은 보도된 내용이 오보로 드러나면 신속히 정정보도를 하고 사과해야 한다 ▲언론은 자극적 영상이나 무분별한 사진,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언론은 불확실한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보도를 통해 유언비어의 발생과 확산을 방지한다 ▲영상취재는 구조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공포감이나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도록 근접취재 장면의 보도는 가급적 삼간다 ▲기자는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된 즉흥적인 보도나 논평을 자제해야한다 ▲언론은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노력한다 등이다.
하지만 이미 언론은 무례한 취재 및 인터뷰로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냈으며, 감정에 치우친 기사제목을 사용했다. 이 같은 불편한 기사들은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퍼져나가 피해자 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보도 가이드라인은 늦어도 한참 늦어버린 것이다.

한국과 외국의 재난 보도
한국의 재난보도는 언론사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속보 경쟁을 하고 자극적인 뉴스 보도와 반복 보도로 많은 사람을 불쾌하고 우울하게 했다. 심지어 공중파 방송은 ‘특집 뉴스’란 명목으로 대부분의 프로그램 편성에서 다양성의 시계가 멈췄다. 반면 미국의 대표 언론인 CNN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실종자 가족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하거나 감정적인 리포팅을 하지 않았다. 수온과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계산하며 차분하게 보도하며 재난보도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은 재난보도뿐 아니라 ‘자살보도 윤리강령’ 또한 잘 지켜지지 않는다. 자살보도 윤리강경은 모방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보도지침이다. 하지만 언론사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시행하지 않거나 언론사의 이익을 위해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을 선정적이고 구체적으로 보도한다. 보도지침은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언론사들의 윤리에 맡기는 것인데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이젠 KBS 같은 정규방송에서 보도하는 뉴스를 믿지 못하겠다. 계속 같은 내용과 자료화면을 반복할 뿐이라 신뢰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JTBC 등 종편 뉴스를 시청하고 실시간 중계 뉴스처럼 직접 현장에 찾아가서 자세히 조사하는 고발뉴스가 더 신뢰가 간다.” 지난 6일 세월호 대구 합동분향소를 찾은 차봉수 씨(26)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다.
이번 사건의 보도 행태와 관련한 국민 비난 여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언론의 신뢰성은 바닥을 기고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세월호 언론’이라고 검색하면 ‘세월호 언론 믿지 마세요’란 연관검색어가 함께 뜰 정도. 한국기자협회의 뒤늦은 대응에도 이미 국민들은 공중파 언론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는 편파적 보도를 한 탓이다. 공중파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일부 가족으로부터 박수를 받은 부분만 내보냈다. 앞서 실종자 가족들이 항의하는 모습은 철저히 편집된 것이다. 이에 불만을 가진 실종자 가족들은 많은 언론사와 기자의 취재를 거부하거나, 고발뉴스나 팩트TV 등 소규모 독립 미디어와만 인터뷰를 허락하기도 했다.
이제 대부분 국민은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공중파가 아닌 JTBC와 같은 일부 종편채널이나 케이블방송의 뉴스 또는 뉴스타파처럼 민간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뉴스를 더욱 신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 매체는 왜곡 없이 현장을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수많은 어린 생명이 시들어 가는 모습이 생중계로 전파되며 크나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주어야 할 언론의 이해할 수 없는 보도 행태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기성 매체는 국민들이 왜 자신들의 매체를 거부하고 대안 언론에 귀 기울이는 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들 역시 더 이상은 언론에 귀를 기울이더라도 보여주는 그대로를 무조건 믿거나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도 자극적인 뉴스에만 반응할 것이 아니라 보다 수준 높은 뉴스를 내보낼 수 있도록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그만큼 언론사엔 이익이 되기 때문에 언론사의 보도윤리는 지켜지지 않게 된다. 보도 내용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과 비판으로 더 나은 언론 환경을 만들도록 자극하는 것도 시청자로서의 국민의 의무인 것이다.
나아가 한국기자협회 역시 언론윤리강령에 기초한 재난보도준칙 등의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더 이상은 속보 경쟁에 치우친 왜곡된 정보를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손지현 신관창 윤명은 지선민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