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가 되면서 높은 빌딩이 들어서게 됐고 딱딱한 콘크리트 사이로는 메마른 바람이 볼을 스친다. 높은 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가 발밑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저마다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옮기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현대 직장인들에게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캠퍼스 안에서 귀에 이어폰을 끼고 바쁘게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 각자 과제나 학업 때문에 피곤이 역력히 들어나는 얼굴을 내비치는 학생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이 없다. 학생들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여유’나 ‘휴식’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매번 바쁘게 살아가는 사이에 ‘내’가 주가 되는 생활이 아닌, ‘일상’이 주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삶이 반복되면 자연스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잃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으로 쌓이는 불만감에 우울해하기도 하며 지쳐 잠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쁜 와중에도 몇 시간만 시간을 내어 휴식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본지도 이번에 시간에 쫓기는 일들은 잠시나마 손에 놓은 채,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할 곳을 다녀왔다 .

고전 음악과 커피 한잔의 여유, 녹향에서
대구 중구 동성로의 사람들이 북적한 번화가를 지나 화전동의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소수의 사람만이 존재하는 조용한 거리가 나온다. 화전동의 교동시장 쪽으로 가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사람 한, 두 명이 들어갈 정도의 비좁은 길들이 있다. 이곳의 길에선 대구의 근대적인 모습과는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좁은 길 사이로는 당시, 짜장면 한 그릇 배불리 먹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넣지 않고 싸게 팔았던 ‘풀짜장’과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골밥상집’이 눈에 띈다. 어느새 메말랐던 도시와는 사뭇 멀어진 기분이다.
작은 골목길을 지나면 큰 주차장이 하나 나오는데, 이 주차장 옆으로 들어선 낡은 건물들 사이로 ‘녹향 음악실’(MUSIC CLASSIC)이 보인다. 녹향은 전국 최초의 고전 음악 감상실이다. 이곳은 화가 이중섭과 시인 유치환 등, 피란 문인과 예술인들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녹향은,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훌륭한 문인들과 예술인이 드나들었다고 해서인지 들어서는 입구부터가 남다르다. 오래된 여러 목재시설들과 지금은 촌스럽다고 느껴질지 모르는 낡고 큰 간판.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컴컴한 실내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계산대 옆의 방에서 인자한 할아버지 한 분이 서둘러 나와 안내를 하신다. 바로 본격적인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음악 감상을 하려고 들어선 곳은 옛 스피커가 설치된 무대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디지털 브라운관 TV, 몇 안 되는 탁자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무대 반대편으로는 수많은 레코드판과 음악관련 서적들, 음악 테이프들이 찬장 안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
자리에 착석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새에, 녹향의 주인장은 엔틱 커피 잔에 MIX커피를 타서 테이블 앞에 내려놓는다. 그러고선 원하는 곡이 혹시나 있는지 물어온다. 이때 손님이 생각해 둔 곡이 없다면 주인장이 몇 곡 선정을 해, 음악을 튼다. 첫 곡은 첼로 협주곡으로, 피아노와 함께 첼로의 소리가 주가 된 연주곡이다. 녹향에선 여느 카페처럼 스피커에서 소리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무대 옆에 따로 설치된 옛날 디지털 브라운관 TV에서 연주가의 악기를 켜는, 열정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첼로 협주곡으로 시작해, ‘Going Home’이라는 클래식 적이면서도 민요 포크적인 노래, 마지막으로 웅장했던 관현악까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하는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다소 귀에 어색하다. 이때까지 우리가 매번 접해왔던 대중음악과는 거리가 먼 소리다.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가 개성이 넘치지만 한 대 어울려 하나의 큰 작품을 만드는 소리가, 소름끼치는 선율을 만들어 낸다. 음의 강약과 높낮이가 자연스레 귀에 들어오고 시선은 앞에 있는 브라운관에 꽂히게 된다. 처음에 어색했던 소리가, 이제는 한때 바빠 돌보지 못했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 해, 편안하다.
이곳에서는 서로간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쁜 것과는 다르게 고전 음악을 감상하며 ‘나’를 돌아보고 나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눈을 감고 흘러가는 음악의 선율처럼 지나왔던 바쁜 일상을 차근히 정리해보는 시간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시끄러운 일상과 일렉트로닉 사운드에서 벗어나, 향토 예술인들의 옛 자취를 느끼고 클래식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어떨까.

전통찻집에서의 향기
식사 후 흔히 볼 수 있는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을 한 번쯤 다른 곳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기자는 이번 기회를 빌려,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지나쳐, 물고기와 국화(구. 우아모)라는 전통 찻집을 방문했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거리를 지나쳐 가게에 발을 디디는 순간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넋을 놓게 되고 계단을 오르면 있는 예쁜 간판에 또 한 번 눈길이 간다. 가게에 들어서면 전시된 영롱한 빛을 가진 다기와 찻잔들은 분위기 있는 조명과 잘 어울려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 찻집을 가득 채운 특유의 전통적인 한방 향은 빨리 차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의자에 앉자 기본적으로 제공된 메밀 차도 이곳 분위기에 매료되어 평소와는 다르게 음미할 수 있다.
찻집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주문한 차가 나오는 동안 가게를 살펴보면 이곳은, 우리 전통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한지가 곳곳에 걸려 있으며 버선이나 옛 사람들이 간직했을법한 물건들이 곳곳에 눈에 띄기 때문이다.
가게를 둘러보는 사이 조금만 기다리다보면 주문한 차와 함께 옛날과자인 김막기가 나온다. 차는 다기와 함께 나오는데 다기를 사용해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  종업원은 간단히 차를 우려내는 법을 가르쳐 준다. 종업원은 젖은 잎에서 우려진 맛이 차의 맛과 향을 더 좋게 하기에 첫 번째로 우려낸 차를 버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차를 더 풍미 있게 즐기는 방법도 배우는 시간이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향도 좋은 연잎 차는 연잎 특유의 향 때문인지 계속해서 손길이 갔다. 위장에 좋다는 송화 가루와 달콤한 꿀을 넣은 송화 꿀차는 그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목을 타고 내려오는 차는 단전을 비롯해, 몸 전체에 따스함을 줘, 포근함을 안긴다.
어느 곳에서도 잘 느낄 수 없는 분위기 속 은은한 음악에 빠져들고 한껏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한 곳이다. 정신없는 밖의 거리와 대비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이 장소는 참 모순적이었고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면 뜨거운 햇볕을 피해 잠시 쉬어가는 공간으로도 괜찮을 것이며 잠시나마 일상의 노곤함을 잊게 해줄지도 모른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으나 멀리 갈 수 없을 때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대피소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답답하고 혼자 방황을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캘리그라피의 문구도, 고즈넉함이 묻어나는 기와, 버선 등 우리 옛 물건들이 치열했던 삶을 한시름 놓아준다.

지금의 것과 다른 것이 많았던 장소들은 더욱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했다. 바쁜 현대에서 이런 다른 면을 마주하니 비호인들은 기존의 것들에 조금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전통찻집 벽면에서 보았던 ‘느리게 움직이고 숨 쉬고 내려놓고 사랑하고 밥 먹고 웃고 기도하고 침묵하라’는 캘리그라피의 문구처럼 내 삶을 되돌아보며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이야기하고 싶다.

김초롱 기자 손지현 수습기자  kcl341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