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Digital) 미디어와 SNS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사실 여러 디지털 기기들과 SNS는 참 편리하고도 고마운 존재지만 요즘은 주객이 전도되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디지털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스마트한’ 세상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세상에 빠진 나머지, 정작 자신들의 세상에는 관심이 없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자신의 할일을 미루거나 대충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바로 앞에 친구가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길과 관심은 네모난 화면 안에서만 맴돈다.
디지털 매체가 이제는 휴식을 위한 도구가 아닌 자신을 현실로부터 떼어놓는 장벽이 되어 버린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거나 자신을 재충전하기 위한 시간보다는, 일시적인 흥미 요소 등에 관심을 두는 시간이 더 많은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일상으로부터 일종의 도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을 디지털 세상이라는 달콤함에 빠져 허비하고 있는 것 같다.
기자는 이틀 동안 아날로그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디지털 세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이용하되, 재미는 있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잠시만 내려놓고 아날로그(Analog)한 세상으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기자는 이틀간의 체험에 앞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세웠다. 첫째, 스마트폰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전화와 문자 메시지만 사용한다. 둘째, 단순한 음악감상 기능의 MP3,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 자료 검색 외의 디지털 사용은 자제한다. 셋째, 불필요한 인터넷 서핑과 SNS 활동을 하지 않는다.

디지털과 이별, ‘왜 이렇게 불안하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기자의 ‘아날로그’한 하루는 시작될 예정이다. 아침이 오면 외면해야 하는 인터넷을 마지막으로 실행하자니 괜히 새벽까지 잠이 오질 않았다. 이게 뭐라고. 마치 중대한 거사를 눈앞에 앞둔 듯 비장해지는 모양새가 우스웠다. 기자는 차근차근 스마트폰과 이별할 순간을 준비했다.
가장 먼저 하루의 끝과 시작을 늘 함께 했던 스마트폰의 알람 기능을 해제했다. 알람 기능은 참 편리하지만, 항상 시끄러웠던 아침이었기에 조용히 아침을 맞고 싶었다. 기자가 잠든 시각은 꽤 늦은 새벽이었지만, 다음날 첫 수업이 4교시였기에 정말 다행이었다. 교수님의 세미나 일정으로 공강이 된 2교시가 얼마나 고맙던지.
서랍 깊은 곳에서 오랜만에 디지털카메라를 꺼냈다. 워낙 고화질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있다 보니 자주 사용하지 않아 배터리가 없었다. 카메라를 충전기에 꽂고 문득 스마트폰을 바라보니 꽉 차있는 배터리의 양이 보였다. 평소 빠르면 2~3시간 만에도 쉽게 닳던 배터리가 얼마나 유지될지.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 뉴스를 훑어봤다. 자극적인 제목들과 또 자극적인 댓글들… 노트북의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LAN선도 뽑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대학 DU 앱 개발센터에서 만든 스마트폰 중독 방지를 위한 ‘Addiction STOP’ 앱을 실행했다. 정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의 사용이 제한되는데, 자신이 필수로 사용해야 하는 항목은 설정 시간 중에도 활성화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기자는 전화와 메시지 기능만을 활성화시켰다.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최대시간인 23시간 59분으로 설정한 후 ‘잠금’ 버튼을 눌렀다. 아쉽기도 하지만 조금은 후련하고 새로운 느낌. 심심할 때면, 아니 심심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들어갔던 SNS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고민에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알람 없이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잠들어야 했다.

스마트폰 멀리하니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다
새벽 3시쯤 잠이 들어 눈을 뜬 시간은 오전 9시 45분. 다행히도 12시 수업을 가기에 무리 없는 시간이었다. ‘알람 없이 일어나보자’는 마음이었지만, 결국엔 룸메이트의 알람 소리와 준비하느라 조금은 부산한 소리가 아침을 깨웠다.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켰지만 랜선을 뽑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리저리 마우스만 움직이다 켜게 된 것이 한글 프로그램인데, 아침부터 기사를 쓰고 있자니 그래도 조금은 알찬 느낌이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도 개선됐다. 평소라면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잠시, 스마트폰에 한눈을 팔아버리기 일쑤였지만 확실히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왔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와이파이(Wifi)를 연결하느라 손놀림이 바빴던 때를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향하는데, 새삼스럽게 풍경이 참 예뻤다. 벌써 3년째 만나는 우리 대학의 봄이지만,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예쁜 풍경들이 참 많이도 보였다. 그저 ‘스마트폰을 멀리하자. 나만의 시간을 갖자’고 다짐했을 뿐인데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편해졌나 보다. 예쁜 것을 보면 어김없이 꺼내 들던 스마트폰 카메라였는데, 오히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감상하는 시간이 늘어 더 행복했다. 늘 습관처럼 손에 쥐고 다니던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으니 손도 가벼웠다.

비생산적 시간에서 생산적 시간으로
여가 시간을 보낼 때도 아날로그 체험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평소라면 기숙사에 오자마자 켜는 게 노트북이었는데, 차분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오늘 나온 잡지와 신문을 정독하다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출처 없는 소문과 그릇된 정보, 편향적이고 비판적인 댓글이 난무하는 인터넷 신문과 달리 종이 신문은 스스로 의견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인터넷 신문을 읽을 때는 주로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 밑의 댓글을 먼저 읽고 정작 중요한 기사는 대충 훑어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종이 신문을 읽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정보 및 소식을 접하게 됨은 물론이고 기사 내용을 자세히 읽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감까지 꽤 시간이 남은 과제를 미리 하는 열정까지 보이다니, 이례적인 일이 아닌가. 사실은 인터넷 서핑을 못하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던 중 나온 선택에 불과하지만. 또 상대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시간이 줄다 보니 창의적인 생각이 늘었다. 수동적으로 인터넷 속 주어진 정보를 베끼기보다, 능동적으로 생각해 낸 ‘나만의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생각을 잊고 살았다는 것은, 곧 자신의 창의력과 재능을 스스로 감추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를 만나 자리에 앉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도 친구는 메시지 도착 알림 소리가 들릴 때면 어김없이 고개를 숙이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흐름이 끊긴 대화에 그런 친구가 조금 미워 보이지만, 사실 예전을 떠올리면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읽음 표시 ‘1’의 속박에서 벗어나다
어젯밤에는 항상 끼고 자던 MP3의 이어폰을 빼놓고 오랜만에 조용히 잠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잠든다는 것은 참 바람직한 하루의 마무리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을 깨고는 창문의 커튼을 걷었다. 창문을 여니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말소리, 따스한 봄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도 아름다웠다. 방 안에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아침의 하늘을 참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침은 항상 머리맡의 스마트폰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알람을 끄고 이불 속에서 밤새 업데이트되었을 SNS 소식들과 인터넷 뉴스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하늘을 보는 여유는 만무했다.
주로 메신저로 간간이 인사를 나누던 친구와도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반가운 목소리를 듣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형식적인 인사가 아닌 진실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기뻤다. SNS 메신저의 읽음 표시 ‘1’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 기쁨에 일조했다. 금방 닳아 두세 번은 갈아 끼우던 스마트폰의 배터리도 하루를 연명했다. 그러나 책상 위의 노트북을 본 순간 인터넷 서핑과 SNS 로그인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몰려와 잠깐 한눈을 팔기도 했다는 건 비밀로 해두자.
단 이틀간의 아날로그 체험이었지만 그것은 그 이상의 가치를 안겨 주었다. 손 안의 작은 세상보다 눈앞의 사람과 풍경에 눈길이 갔고, 외면해왔던 일상의 일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음이 더 편안해졌으며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줄었다.

전자책이 활성화되던 지난 2010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MIT 교수는 “종이책의 소멸이 진행 중이며 10년도 아닌 5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2015년이 아니라 훨씬 후에도 기자는 감히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째깍째깍 손목시계와 800원짜리 종이 신문,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추억의 음악… 시대가 발전해도 사라지지 않는 물건들은 늘 우리 곁에서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균형을 맞춰준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들처럼 각자의 역할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공된 콘텐츠를 보고 듣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앞서 나만의 콘텐츠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가끔은 디지털을 멀리하고 아날로그한 하루를 보내면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디지털 활용과 SNS 사용은 생활 속 잠깐의 휴식이 되어야지, 그것이 생활이 되면 안될 것이다. ‘휴식’과 ‘할 일을 미루는 것’을 구분하는 알찬 대학생활이 되었으면 한다.
유희원 기자 dbgmldnjs-v-@hanmail.net

유희원 기자  dbgmldnjs-v-@hanmail.net